아흔 두 번째의 봄
강숙희
오일장은 봄으로 가득 찼다. 엄마 뱃속에서 영양분 가득 채우고, 세상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렸던 아가처럼, 겨우내 언 땅속에서 조용히 키워져 갓 태어난 봄나물들이 넘쳐난다. 초록의 풋내가 코끝을 스친다.
새벽부터 달려와 무주읍에 들어서니, 아침 봄볕이 어머니의 품처럼 나를 맞는다. 따뜻하다. 팔을 뻗어, 안아주는 모습의 산자락이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 산의 어깨 속에 안기고 싶은 마음에 팔을 벌려본다. 청량한 아침 공기를 마시려고, 심호흡을 크게 해본다. 폐부 깊숙이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흙내가 먼저 들어온다. 봄은 마시는 공기부터 다르다. 고개 들어 산줄기를 둘러봤다. 아직은 물안개가 흩어지지 못하고 산자락에 걸터 앉아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해가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자, 희뿌연 산안개가 조금씩 걷힌다. 비밀을 풀어놓듯이 능선이 겹겹이 모습을 드러낸다. 청년들이 떠나고 어르신들이 많이 남은 이곳 사람들처럼 산도 오랜 세월 주름진 결이 살아있다. 결들이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내가 서있는 곳으로 층층이 낮아진다. 산줄기는 나와 닿아 있다.
산자락에 안긴 건, 마을과 나뿐만 아니라 남대천도 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여 만들어진 하천이 읍을 지나간다. 물속에는 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머니의 젖줄같이 변함없이 생명력을 뽐낸다. 하천 한가운데 있는 돌도 산을 닮아 둥글다. 돌 사이를 흐르는 물비늘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곳에는 밤의 반딧불이 사라지지 않고 낮에도 환생한 느낌이다. 강둑의 벚나무 꽃은 때를 기다리는 듯, 초록이 섞인 채로 봄을 맞고 있다.
장날인 만큼, 반딧불 시장 사람들의 발걸음은 오늘따라 활기차다. 남대천의 물줄이가 모이듯, 마을마다 이어진 모든 길이 이곳으로 연결된다. 새벽부터 와서 자리 잡느라 분주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장터 입구로 흘러들어온다. 지붕 아래로 빛이 스며든다. 그 빛 아래로 오고 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까지 겹친다. 반딧불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마늘이며, 튼실하게 살이 올라 무너질 듯 쌓아 있는 쪽파 단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파김치를 담그고 싶어서 흙까지 딸려 나온 쪽파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다듬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긴다.
장터 입구부터 많은 농작물과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내 눈길과 발걸음 또한 분주하다. 먹거리와 살 거리가 넘쳐나는 장터는 나를 깊숙이 끌어들인다. 큰 솥에서는 도넛이 튀겨지고 있다. 피어오른 김이 아케이드 천장 아래로 흩어지며 냄새로 가득 메운다. 식욕을 누른 쇼핑 욕구가 논둑 아지랑이 올라오듯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봄 작물은 주체하기 힘든 유혹이다. 장터 구경을 실컷 하고도 하나도 사지 못했다. 제대로 물건을 골라볼 요량으로 미루다가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오고 말았다. 시장 구경에 시간이 남대천의 물살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장터 끝자락 즈음 오니, 여러 소리들도 잦아든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느려진다. 그때 한쪽 귀퉁이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어림잡아 구십 살을 되어 보였다. 할머니의 자리는 지붕도 없이 그대로 햇살을 받고 있다. 반듯한 좌판 대신에 누런색 박스 두 개 정도 놓고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 몇 개를 올려놓은 것이 전부였다. 할머니의 말린 팔처럼 둥근 빨간색 바구니는 빛바랜 분홍색으로 변해있다. 바구니마다 넘쳐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분량의 초록 채소들이 담겨있다. 아직 땅속 흙까지 끌고 나온 냉이, 강둑에서 캤을 범한 연한 쑥, 촉촉한 물기가 마르지 않은 고추, 덕유산 자락에서 캐서 삶아서 가지고 나온 고사리가 햇살 아래 축 늘어져 있다. 파김치를 담그려고 했었기에 쪽파가 담긴 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의 가는 머리카락을 닮은 유난히 가는 파 한 웅 큼이 빗질해 놓은 듯하다. 겨우내 움파의 시간을 견디고 또 봄을 맞기 위해 올라왔을 파, 장터로 나오기 위해 그 파를 다듬었을 손길이 느껴진다.
그 앞에 걸음을 멈춰 서자, 할머니가 굽힌 채 앉아 있다가 초록 플라스틱 의자에서 일어선다. 천천히 움직였지만 할머니로서는 가장 빠른 속도였다. 손님을 맞는 오랜 습관이 몸에 밴 듯하다. 할머니의 허리는 의자 모양과 닮아있었다. 오랜 세월 논밭에서 보낸 시간의 흔적이 만든 것이리라. 덕유산 산자락의 골처럼 패인 주름진 얼굴에도 아름다운 물결이 일렁인다. 미소 지으며 먼저 보낸 인사로 인해, 나는 흥정을 할 수가 없다.
“쪽파 얼마예요?”
내 말이 잘 안 들리는지, 입 모양을 쳐다보며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이며 “오천 원”하더니 줄지어놓은 바구니를 가리킨다. 얼룩덜룩한 손마디가 굳어져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굵은 핏줄은 파 뿌리처럼 손등에 돋아 있다. 겨우 가격을 물어봤을 뿐인데 할머니 행동은 빠르다. 어린아이 머리카락을 쓰다듬듯이 투박한 손으로 파를 집어 비닐봉지에 냅다 담는다. 나를 꼼짝 못 하도록 해놓고 빛의 속도로 계산하라는 눈치다. 지갑을 꺼내자 냉이 바구니도 슬쩍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
장날을 기다리며, 지난 시간 동안 호미를 들고 냉이와 쑥을 캐러 산자락 언저리에서 햇살을 받았을 할머니의 얼굴색이 밝은 빛 아래 더 검다. 냉이 뿌리의 흙을 손톱으로 슬쩍 떼어 털어낸다. 얼핏 보기에도 냉이는 정리가 안 되어서 지저분하다. 모르게 하는 행동 같아서 못 본채 했다. 쪽파만 사려고 했는데, 냉이와 쑥까지 검은 비닐봉지에 빠르게 담는다. 세상의 속도보다 느릴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할머니만의 시간의 속도가 있었다.
“냉이는 어디서 캐셨어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먼 산자락을 가리킨다. 덕유산이라고 짐작된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아흔둘”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돈을 건네자마자 가슴팍 앞주머니에 바로 넣는다. 빠른 동작으로 인해 나이가 무색하다. 서울 사는 손주들의 용돈을 줄 생각에 기쁜지, 눈웃음을 지으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젊은 색시 고마워 유” 할머니의 눈에는 예순셋의 봄을 맞는 내가 새색시 같은가 보다. 눈빛에서 돈을 받는 반가움과 사람 만나는 반가움이 읽혔다.
‘할머니의 스무 살의 봄, 예순세 살의 봄은 어떠했을까? 그때도 한 겨울 지나 봄이 오면, 강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허리 굽혀 쑥과 냉이 한 뿌리를 캐는 일, 파를 심고 다듬는 일, 그 일이 할머니의 삶을 이어지게 하는 일이었으리라. 겨울을 견디고 올라오는 쑥을 캐기 위해 새로운 봄을 또 기다렸을 것이다. 장이 서는 날을 누구보다도 기쁘게 기다렸을 것이다. 방학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할머니의 미소는 어린아이와 닮아 있었다. 마주 잡은 할머니 손등에 새겨진 주름은 아흔 두 번째의 봄이 새겨져 있다. 그 속에는 따사로운 봄 햇살, 몰아치던 비바람, 높고 푸른 구름, 차가운 겨울 눈발을 지나 드러난 봄의 지문이 남아 있다.
장터를 빠져나오면서 내 손을 내려다본다.‘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머니처럼 공들여 뽑고, 다듬고, 쓰다듬었던 시간을 가졌던가?’ 예순세 번째 맞는 나의 봄날은 할머니를 기억할 것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하얀 솜털의 쑥과 할머니의 머리카락 닮은 쪽파와 흙 향 가득한 냉이를 만날 수 있는 할머니의 아흔세 번째의 봄을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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