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털 방석 위,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의 앞발을 맞댄 채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들어 있다. 삼색 줄무늬가 어우러진 작은 몸뚱이 두 개가 하트 모양으로 포개진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둥글게 만든다. 또 다른 사진 속에서는 같은 녀석이 노트북 자판 위로 겁 없이 올라서서 카메라를 응시한다. 인간의 일상 한복판으로 성큼 들어온 작은 생명. 이 장면들은 단순한 ‘귀여움’을 넘어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우리는 고양이를, 이 반려동물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반려동물 1500만 시대라고 한다. 무주에서도 마당에서, 골목에서, 거실 소파 위에서 고양이와 눈을 맞추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고양이는 ‘키우는 것’과 ‘버리는 것’ 사이 어딘가에서 위태롭다. 한쪽에서는 가족이라 부르며 사료와 병원비를 아끼지 않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새끼를 낳았다는 이유로, 이사를 간다는 이유로, 더는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길에 내놓는다. 사진 속 두 마리가 서로의 체온에 기대 잠든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만들어 낸 유기와 학대의 그늘을 더 또렷하게 비춘다.
고양이는 장식품이 아니다. 노트북 위를 아장아장 걷는 새끼 고양이의 발걸음에는 호기심과 신뢰가 함께 담겨 있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가 책임의 무게다. 길 위의 고양이에게 밥 한 그릇을 놓아주는 일, 중성화수술(TNR)에 협조하는 일, 분양보다 입양을 먼저 떠올리는 일, 끝까지 책임지는 일. 거창한 동물복지 담론이 아니라 이런 작은 결정들이 모여 한 생명의 일생을 좌우한다. 무주군 역시 유기동물 보호와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 등에 대한 지역사회 차원의 논의를 더 적극적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구체 정책 현황 확인 필요].
고양이는 인간이 ‘소유’하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동그랗게 말려 잠든 두 마리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안전은 누군가의 따뜻한 결심에서 비롯됐다. 우리 곁의 작은 생명들이 버려지지 않고, 학대받지 않고, 굶주리지 않는 무주. 고양이와 사람이 같은 골목에서 무사히 늙어가는 풍경. 그것이 성숙한 공동체의 또 다른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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